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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7.24 70세 사망법안, 가결? 고령사회적 상상력.
  2. 2013.12.31 조력자살

[70세 사망법안, 가결, (2018) 가키야 미우 저 /김난주 역] 별5개 중 ★★★★

 

진심 도발적인 제목이다. 평화로워보이는 표지삽화와 제목의 언발란스함이란!

얼마나 많이 읽힌 책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목으로 치면 내 인생에 2번째로 솔깃한 책이었다. (참고로 제목만으로 나의 베스트 책은 "바보들은 다 죽어버려라 (카를르 아데롤드)"이다 ㅎㅎㅎ)

 

제목에 낚인 사람들이 분명 나 뿐만 아닐 것이다.

평균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60세가 훌쩍 넘은 사람이 40대 보다 건강해보이는 마당에 연금, 치매, 돌봄, 세대간 갈등 등을 떠올리면 모두 한번쯤은 떠올려본 상상.일 것이다.

삶은 유한하지만, 그 유한함을 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죽음 역시 내가 정할 수 없지만, 공평하게 누구에게나 온다. 

그래서 고령화시대는 두렵다. 

대비를 할 수도 안할 수도 없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더더욱 예측불가능한 문제이다.

 

소설은, 돌봄 제공자인 전업주부(일반적으로 말하는 이상적인 남편, 자식들의 완벽한 집을 만들어주려고 하는 중산층가정의 수호자)이자, 거동불편한 80대 시어머님을 모시는, '엄마'의 시선에서 70세 사망법안을 시행 2년을 앞둔 상황을 그려낸다.

명문대 졸업 후 좋은 직장을 인간관계가 힘들어 그만 둔 귀하게 커온 아들.

엄마가 자신에게 할머니돌봄을 넘기는 것이 부담스러워 도망나왔다가 요양원에서 일하게 된 딸.

자신은 평생 직장 다니느라 힘들었다며, 명예퇴직 후 집안 일은 사회생활 안하는 집안의 여자들이 하는 거라면서 혼자 세계여행을 떠나버린 아버지(남편, 혹은 아들).

전쟁을 견디고 좋은 세상 만드느라 고생했는데 남은 삶이 2년 밖에 없다는 것이 억울한 거동 불편한 시어머니.

엄마를 돌보는 것은 싫지만, 엄마의 유산은 탐나는 출가한 두 딸들(고모이자 시누이...)과 그 사위들

...그리고 좋은 엄마, 며느리, 주부가 되려다 지쳐버려 가출하게 된 엄마.

70세 사망법안이라는 황당한 정책이 어떻게 사회적 대화의 주제가 될 수 있는지, 

가족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들리는지...일본사회가 고령화로 인해 예상하는 사회경제적 문제의 이면에 있는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소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부담(고용, 세금, 장기적 비전의 정책수립, 가사부담 등)을 모든 사회구성원이 함께 나눠야된다는 메시지?이다- 그렇다, 너무 결론이 당연해서 별이 4개인 것이다. ㅎ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나에게 재밌었던 가장 큰 이유는 노인이나 청년의 목소리가 아니라, (노인도 아니고 청년도 아닌) 허리세대의 목소리를 포함하면서 고령화에 대한 특정세대 책임론(꼰대같은 노인이 문제다, 게으른 청년이 문제다는 식의 화법)을 피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치매, 노인요양, 존엄사 같은 고령사회문제나 여성의 가사노동 문제, 청년고용문제 등이 심각하지 않게 느껴진다. 은퇴를 앞둔 허리세대(굳이 얘기하자면, Post-베이비부머세대)가 양 극단의 세대들 문제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가족이란 틀을 통해 잘 드러내줬다고 본다. 

 

작가(혹은 번역가)의 필력 덕분인지, 이 소설은 이렇게 몹시 불편한 이야기를 기분나쁘지 않게 잘 보여준다. 

 

대표적인 급속한 고령화 국가, 일본에 지지 않고 더 심각하다면 심각한 한국을 상상하며 읽었을때는.... 
의외로 저출산 문제는 나오지 않는단 점.

왜 한국사람들은 고령화사회로 가는 악셀레이터를 밟고 있는지. 이 소설처럼 좀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간만에 재밌으면서 생각할만한 책을 읽어서 기분이 괜찮다!

Posted by a.to.z :

조력자살

2013. 12. 31. 14:33 from research

조력자살이란,  

개인이 죽을 시점을 자발적으로 정해, 다른 사람(기관)에게 그 과정에 대한 도움을 요청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이를 죽음을 '준비'한다고 할지, '방조' 혹은 '협력'한다고 할 것인지...논란의 여지가 많을 것이다. 

사실 인류가 이런 사치스러운 고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최근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력자살을 의료기술의 발달과 고령화가 가져온 이 시대의 도덕적 딜레마라고 생각한다. 


가톨릭 신자로서 생명은 하느님에게 달린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현대 의학 행위들이 정말 신의 영역을 존중하고 있는 것일까란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쇠약해져 먹을 수 없으면 위에 튜브를 연결해 음식을 넣어주고-그래서 간신히 살아있는 사람과, 
그 사람을 돌보기 위해 삶을 자의반타의반 포기한 가족들.
그들에게 과연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살아가는 것. 
혹은 점차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 기계로 숨을 넣어가며 사는 것.
이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이 영혼을 잃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가까운 사람들...
이것이 언제부터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 싶다. 
이런게 늙어가는 것(aging)일까.

비단 노인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젊은 세대들도 자신이 갑작스런 사고를 당해서 판단을 할 수 없을 경우를 스스로 대비해 가족들을 보호하고자 조력자살을 선택할 수 있다.
더우기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경우, 파생 비용이 어마어마할 것이 때문에,
언젠가는, 누군가는, 다른 이의 생명에 대한 결정을 해야한다. 

조력자살 논의는...
현대의학의 발전, 사회안전망의 미흡함 등을 고려했을때, 
도덕적 고민보다는 해결책을 원하는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얼마전 KBS 세계는 지금에서 조력자살(assisted suicide)을 돕는 스위스 exit이란 단체에 대한 방송을 했다.

내 개인적인 느낌인지, 공영방송이라 그런건지..반대입장의 뉘앙스가 깔린 중립적 멘트 같았다.


왜 사람들이 이런 어려운-무서운 결정을 서슴치 않게 되는 것일까에 대한 이야기가 빠졌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아나운서의 말마따나 조력자살이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고민해야할 문제라면 좀더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Suicide Tourist, PBS Frontline]


[You Don't Know Jack trailer]





Posted by a.to.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