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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5.22 강남순의 용서에 대하여 (2017)

강남순의 용서에 관하여: 용서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2017) 는,

자크 데리다의 "용서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다" 로 시작해서 끝난다.

그렇게 편안하게, 용서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인적 고찰에만 아주 침착하게 머무르는 책이라고 읽힌다.


나는 너를 용서한다...라는 진술의 문제- 즉 피해자가 우월한 위치로 이동하며 다시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폭력성을 드러내게 된다는..-에 집중하며, 데리다의 무권력의 용서라는 개념을 설명하려 한다.


과연 그럴까?

예수의 무조건적인 용서를 피해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일일까. 
그런 개인적 차원의- 저자 자신도 거의 이상이라고 느끼는- 용서는 과연 사회적 차원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몇몇 철학자들의 논리와 저술에 빌어, 용서가 필요한 상황을 발생시키는데 책임이 있는 가해자와 사회구조에 대한 고찰을 거의 생략하다시피 할 수 있었다는 저자의 거리감이 나는 부럽기까지 하다.  


화해라는 순진한 이상만으로 

인간의 용서에 얽힌 아픔과 일그러진 욕망을 용서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느낌이었다.

피해자의 상처로부터 저자가 데리다를 이용해 만들어낸 거리감은, 

가해-피해자 간 균형을 잡고, 고민이 필요한 지점을 제시했다기 보다는,

용서란 이름으로 행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또하나의 폭력을 잘 드러냈을 뿐이라고 느낀다.


무조건적 용서와 무권력성의 용서가 가해자의 행위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

결국 가해자의 잘잘못이 사회적으로 드러남으로써, 가해자가 무언의 도덕적 압력을 받게 된다는 설명은, 

인류가 그간 저질러운 처참하고 잔인한 가해의 행위가 가져온 깊고 다층적인 직간접피해자들의 상처를 압축적으로 피해갔다. 

저자에게 묻고 싶다.  다양한 미성년자들이 연루된 최근 잔인한 사건들에서, 피해 어린이들에게- 가해 청소년들도 너희로 인해 도덕적 압력을 받고 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현대사회의 권력, 힘, 제도의 내재된 폭력성, 재생산되는 구조를 지나치게 가벼이 여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용서할 수 있는 정부는 없습니다.  정부는 나의 고통과 아픔을 알지 못합니다.  오직 나만이 용서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용서를 하기 전에 먼저 나는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Alex Boraine, Janet Levy, and Ronel Scheffer, eds. Dealing with the Past: Truth and Reconciliation in South Africa (Cape Town: Institute for Democracy in South Africa, 1994:12)  강남순 2017:148)

나는, 이 문장의 핵심은 "고통과 아픔을 알지 못합니다." 라는 부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서두에서 분명하게 현대사회에서 용서라는 개념이 조명받는 이유를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책 전체를 끌어가는 논리에서는 용서의 또다른 영역, 즉 가해라는 측면에 대해 다루지 않음으로써, 편안하고 이상적인 일상적 수준의 용서 개념에 머물렀다. 


기대하고 읽은 책이었는데, 몹시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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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to.z :